[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흔들리는 부모의 철학과 원칙

요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부모들이 ‘가장 좌절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자식’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자도 자식 문제에서는 혼쭐이 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식을 가르치려 들다 오히려 부모와 자녀의 관계만 손상되기 일쑤다. 그래서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와 맹자는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이런 유가의 율법을 더 이상 신봉하지 않는다. 부모, 특히 엄마는 유아 때부터 무시로 자녀를 가르치려고 든다. 이 경우 대부분 엄마들은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어느 순간부터 배신당한 절망적인 상태가 되고, 자녀 또한 방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녀를 직접 가르치지 말라는 공자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쓰라린 대가라고나 할까.

그런데 전미현(가명) 교사는 보통의 엄마들과 달리 학습지나 학원에 매달리지 않고 두 딸과 늦둥이 아들을 키우고자 했다. 문학을 전공한 전 교사는 딸들을 키우면서 먼저 ‘책읽기와 운동, 음악’ 이 세 가지만은 ‘필수과목’처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더 극악스러울 정도로 물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책을 통해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전 교사는 “요즘 아이들이 가장 안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바로 독서와 운동,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딸들에게 이 세 가지만큼은 집중적으로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일러스트·만화그리는 목각인형

전 교사는 처음에는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게 따라주는 딸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그 역시 문학을 전공하면서 고전과 같은 책들이 삶에 큰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함께 책읽기에 열을 올렸다. 두 딸은 감수성이 뛰어나 책읽기 진도가 잘 나갔고, 피아노와 그림 등 예체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 교사는 딸들을 지도하면서 무엇보다 ‘들볶지 않고 다만 이끌어가자’고 노력했다.

문제는 학년이 점차 올라가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 불거졌다. 당시 그가 살던 서울 목동에서 자신처럼 독서와 예체능을 우선적으로 하는 엄마들이 자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엄마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 교사는 두 딸을 키우면서 ‘두 딸과의 싸움’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두 딸보다 오히려 원칙과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자신과의 싸움이 더 처절했다고 한다.

“내 아이들이 뒤처지는 게 아닌가 자꾸 의심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가 아이들을 학교 부적응자로 만드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였죠.” 전 교사는 자신의 자녀교육 원칙이 현실,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목동의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교사인 그로서는 학교의 현실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 ‘현실’을 외면하기가 더 힘들었다.

“당시 인천에서 살다 큰딸이 초등 5학년 때 목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큰딸은 부평에서는 반에서 1등을 했는데 목동에 오니 성적이 뚝 떨어졌어요. 주변에서는 다들 특목고에 가려면 지금부터 수학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했죠.”

그럴수록 전 교사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자고 다짐했다. 그는 “남들처럼 학원 보내지 않고 내 신념대로 키운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난 괜찮은 엄마야’라고 위안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원칙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학원을 보내주지 않자 큰딸은 시간날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 만화와 미국 드라마(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려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초등 5학년 이후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미드를 접한 덕분에 절로 영어와 일본어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둘째딸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주었다. 마치 스펀지처럼 엄마의 바람을 늘 충족시켜 주었다. 독서도 정해준 분량을 항상 소화했다. 반면 큰딸은 점차 엄마와는 다른 곳을 보기 시작했다. “한 번은 큰딸이 ‘왜 나를 남들처럼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느냐’고 소리를 질렀어요. 엄마 때문에 학원에 가지 못해 성적이 자꾸 떨어졌다는 거죠.” 전 교사는 이때가 아이들을 키워오면서 맞은 ‘최대의 고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전 남들처럼 학원에 열심히 다녀 특목고에 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아이들일수록 너무 이기적인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요.”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 교사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때 큰 아이에게 학원을 보내 특목고 가라고 그야말로 ‘세게’ 밀어붙였다면 그것 때문에 또 엄청 반항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들처럼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처럼 학원에 보내면 또 학원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면서 긴장상태가 지속되었을 거라는 말이다.

큰아이는 한동안 ‘팸픽’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팸픽은 아이돌과 같은 가수나 배우를 주인공으로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10대층에 인기라고 한다. 전 교사는 팸픽을 보면 유치할 정도의 성적 판타지가 난무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는 결코 유익한 매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딸이 팸픽에 빠져있어도 엄마는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지 말라고 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이때 전 교사는 ‘차라리 학원이나 보내면서 세게 공부나 시킬 걸…’ 하고 후회했다고 한다. 나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키운 결과 딸은 팸픽에 빠져 있고 공부는 중위권을 겨우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나름대로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교사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원칙과 철학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한참 달려오다 보니 자녀교육 문제에서는 ‘헷갈리는 부모’가 돼 있었어요. 입시 위주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홀로 고고한 척, 삐딱하게 이 사회를 보고 있었던 거죠.”

이미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전 교사는 딸이 다시 감수성을 되찾고, ‘꿈꾸는 딸’로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미드와 일본 애니메이션과 팸픽에 빠져 지내면서도 그림은 꾸준히 그렸다. 그나마 엄마에게는 위안이었다. 큰딸은 중3이 되자 좀 정신이 들었던지 미술로 대학에 가겠다고 했다. “둘째딸은 매사에 성실한 데 비해 큰 아이는 좀 불성실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해야겠다는 목표가 정해지면 그걸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집중하고 몰입을 해요. 예체능으로 대학에 가려면 입시 현실에서 학원을 다니지 않을 수 없는데, 큰아이는 학원도 잘 다니지 않았어요. 반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를 했어요.” 결국 큰딸은 원하는 미대에 합격했다.

엄마의 기대보다 그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전 교사는 “아이가 성에 안 차더라도 믿고 기다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또 엄마와 ‘죽’이 잘 맞았고, 엄마의 시간표대로 숙제를 잘 해준 둘째딸은 엄마의 기대에 부응(?)해 문학을 전공하고 있단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교육

전 교사는 아직 늦둥이 아들 교육이 남아 있다. 그는 “두 딸을 키우면서 긴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라면서 “초등 5학년인 늦둥이 아들을 키우는데 이젠 베테랑처럼 여유를 가지고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탈무드에 나오는 이 말처럼 언젠가 자녀를 키우면서 겪는 이 모든 일들은 다 지나가고 부부만 덩그러니 남게 될 게다. 그래도 자식을 키울 때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 있고 보람 있는 시절이라고 한다. 살아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