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참 모진 대통령

지난 5월 모 기업 관계자들과 점심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직후여서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눈물이 화제에 올랐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 양대홍 사무장 등의 이름을 부르다가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기업 관계자들은 대통령의 눈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더군요.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정치적인 쇼가 만들어낸 악어의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세월호 해법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근거로 들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눈물이 진실하다면 담화문에서 제시한 해법에도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해법이 엉뚱했습니다. 느닷없이 해경을 해체하고, 해수부와 안행부를 축소하겠다고 했습니다. 박 대통령에게 진정성이 있었다면 철저히 진상규명을 하고, 그 진상규명을 토대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어야 합니다. 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진상규명을 생략하고 단죄부터 했습니다.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면서도 해경과 해수부, 안행부를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자신은 쏙 빠져나갔습니다. “해법이 진실하지 않은데 흘리는 눈물이 진실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게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2000여년 전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생각납니다. 어느날 그에게 비보가 날아듭니다. 갈리아의 겨울 숙영지에 나가 있던 6000명의 병사들이 6만명에 달하는 적군에게 포위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의 휘하에 기병 400기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신속한 행동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게 카이사르의 믿음이었습니다. 카이사르는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았습니다. 카이사르가 적군을 물리친 뒤 포위에서 살아난 병사들은 카이사르의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감격합니다. 그들 앞에 선 카이사르가 늘 단정했던 그로서는 드물게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도 산발한 채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적군에 포위된 부하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카이사르 같은 지도자를 보고 싶습니다. 우리 대통령은 제때 달려가지도 않았고, 구하지도 못했습니다. 똑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는 유가족들 보고 “그만하라”고 호통만 칩니다.

‘뭐 저런 대통령이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세월호 유가족의 요구를 공식 거부한 이번 발언엔 그냥 말문이 막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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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형식도, 어휘도, 타이밍도 대통령이 했다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어찌 이리 졸렬하고, 천박하고, 노골적일 수 있는지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저잣거리의 장삼이사들이 내뱉는 말로 유가족들을 모독했습니다. 악어의 눈물에 숨겨 뒀던 대통령의 본심이 겨우 이런 거였나요. 앞뒤도 맞지 않습니다. 삼권분립 운운하면서 여당에 협상의 마지노선을 제시합니다. 삼권분립을 떠나 “세월호 같은 참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여야가 유가족과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 좋은 법률을 만들어달라”는 말이 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어떻게 저렇게 야멸찰 수 있는지 섬뜩하기조차 합니다. 어둡고 차가운 물속에서 엄마, 아빠를 부르며 죽어갔을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릴 가족들의 눈에서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차갑게 째려보며 ‘이제 그만하라’고 합니다. 유가족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단식과 농성에 참여한 시민들을 ‘외부세력’이라고 합니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40일이 넘는 단식으로 생사기로에 섰을 때도 외면했던 대통령입니다. 참 차갑고 모진 대통령입니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