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힘 빼기의 마술

얼마 전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다가 귀가 솔깃해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진행자 유희열이 로커 김종서에게서 고음을 내는 즉석 레슨을 받는 장면이었습니다. “보통 고음에 힘이, 호흡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반대예요. 힘을 빼야 해요.” “힘을 빼야 힘을 쓸 수 있어요. 고음일수록 힘을 빼세요.”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데….’ 그렇습니다. 골프 초보자들이 귀가 닳도록 듣는 “힘 빼라” 원리가 고음 내기에서도 똑같이 통하고 있었던 겁니다. 골프도 힘을 빼고 부드럽게 쳐야 좋은 스윙이 나오고, 볼도 잘 맞습니다. 그런데 주말 골퍼는 이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티칭프로는 “힘 빼라” “힘 빼라” 하는데, 볼만 보면 헤라클레스도 아닌데 손에, 팔뚝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머리는 아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힘 빼는 데 3년 걸린다”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김종서는 유희열이 고음을 내려고 턱을 들자 장난스럽게 턱을 때립니다. 턱을 들지 말라는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골프와 똑같은지 신기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힘 빼라”는 교훈이 고음과 골프에만 한정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사실 글도 그렇습니다.

뭔가 그럴 듯하고, 폼이 나고, 힘이 있고, 감동적인 글을 쓰려고 하면 잘 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수식어가 많아지거나, 힘 들어간 게 티가 납니다. 노래 부르다가 삑사리를 내거나, 골프 치다가 뒤땅을 때리는 것과 똑같지요. 이럴 때면 내 몸에서 아예 이놈의 ‘힘’이란 게 없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인생도 그렇지요. 인정 받으려는 마음, 이기려는 마음,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에 그만 힘이 들어가고 맙니다. 힘이 들어가면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내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족이 생겨납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이를 ‘맹인 남자와 데이트를 하러 가면서 짙은 화장으로 한 시간을 허비하는 여자’와 같다고 꼬집습니다.

‘힘 빼기’ 원리는 정치도, 외교도 다를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전쟁’, ‘불바다’, ‘응징’ 같은 살벌한 용어들이 난무하던 남북관계에 갑자기 훈풍이 불고 있습니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용해 노동당 당비서,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등 북한 권력실세 3인방을 불시에 파견한 효과입니다. 북한이 격이나 명분, 의전을 따지지 않고 이들을 보낸 건 힘을 뺀 것과 같습니다. 그러자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꽁꽁 얼어서 해머로 내리쳐도 금도 가지 않을 것 같던 대결 패러다임이 대화로 순간이동하듯 바뀝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남측도 힘을 빼서 어렵게 찾아온 평화의 기회를 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힘 좀 뺐으면 하는 게 또 있습니다. 정치입니다.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뭐 그리 폼 잡을 게 많은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정치인의 어깨는 아마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졌을 게 틀림없습니다. 다이아몬드에 피가 도는 데 4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난항을 겪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두 번 다시 세월호 참사 같은 게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화되면 국민에게 좋습니다. 국민에게 좋은 법인데, 대통령은 장비가 장판교 앞을 막아서듯 세월호 유가족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요지부동입니다. 이것만은 안 된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사법체계 수호 운운하며 힘이 잔뜩 들어가 있으니 홈런 대신 파울볼만 날리는 것 아닐까요.

왜 국민에게 좋은 법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대통령이, 정치인들이 국민의 적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힘 빼면 고음도 잘 올라갑니다. 샷도 정확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글도 군더더기가 없어집니다. 전쟁 대신 평화가 옵니다. 가만히 보니 힘 빼서 나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야든 고수일수록 힘을 빼는 데 능숙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힘을 빼면, 국민들이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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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라 힘!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