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책]재판권과 검찰권아 좀 겸손하면 안되겠니~

인저스티스, 부러진 화살

<인저스티스>브라이언 해리스 지음, 이보경 옮김, 열대림 펴냄(왼쪽). <부러진 화살>서형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사법권도 어디까지나 시민이 위임한 권력일 뿐이다. 그런데 법조인들은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외투를 둘러쓰고 자신들만의 천부적 권리인 양 독점하려 든다.

재판권과 검찰권은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것이 아니다, 성적순이 아니다. 판사들의 것도 아니요, 검사들의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시민의 것이었다. 그런데 관심 밖이었다. 올 상반기 우리 사회의 특별한 성과 중 하나가 시민들이 비로소 ‘사법권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은 관심에서 시작되어 의심으로 이어지고, 대안으로 지속된다.

다른 나라의 법정소설이나 재판을 다룬 영화·드라마를 흥미있게 본 적이 많을 것이다. 논픽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재판을 다룬 이런 류의 흥행은 없다. 법률과 수사와 재판은 오로지 사법 엘리트들의 몫이요, 사법 관료들과 법조인들 사이 ‘그들만의 리그’였다.

‘세기의 정치범 재판’이라는 부제를 단 <인 저스티스>(열대림)는 영국 출신의 변호사 브라이언 해리스가 링컨 암살범에 대한 재판에서 갈릴레이 재판까지 13건의 판결을 ‘정의’라는 관점에서 해체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를 향해 석궁을 쏘다’라는 부제를 단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은 작가 서형의 작품이다.

해리스는 “역사학도들에게 법정이 유용한 한 가지 이유는 재판 과정이 오랫동안 세심하게 기록되어 왔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석궁재판’에 대한 꼼꼼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해리스의 고찰을 떠올리게 한다.

해리스에게 정치범 재판은 “단순히 권력자가 자기를 위협하는 인물에게 가하는 행동”일 뿐이다. 정치범죄를 다루는 재판이 아니다. 그래서 반역자는 물론 의무태만, 불경, 노동쟁의 같은 다양한 문제에 대한 사범들의 재판이 이 책에 포함될 수 있었다.

링컨 암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남자 6명과 여성 1명은 일반법원이 아니라 군사법정에서 재판받았다.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다. 전쟁 상태도 아니고 계엄 상태도 아닌데, 과연 민간인이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이유만으로 군사법정에서 재판받아야 할 헌법적 근거가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부정의’라는 제목이 성립할 수 있다.

‘석궁사건’을 두고 법원은 테러라고 했다. 당시 대법원 공보관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와 잘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흉기를 사용하여 테러를 감행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설명됐다. 서형은 이 사건을 통해 “법을 다룬다는 이유로 최고의 존경을 강요하는 국가의 권력조직 내에서 나타나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대한민국 사법부에 홀로 도전한 한 개인이 겪게 될 운명”을 그렸다. 그래서 해리스의 기준대로라면 한국판 ‘정치범 재판’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률가들은 거의 모두 “오로지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에만 관심을 갖고, 법을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죄 있는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고, 죄 없는 사람은 풀려나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리스는 말한다.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가 좀 더 정직하고 절박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요즘 이 책

재판은 신탁이 아니다. 언제든지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판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요, 한계다. 그래서 재판권과 검찰권은 겸손해야 한다. 사법권도 어디까지나 시민이 위임한 권력일 뿐이다. 그런데 법조인들은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외투를 둘러쓰고 자신들만의 천부적 권리인 양 독점하려 든다. 재판에 대한 검증과 비판을 사법권 독립에 대한 침해로 오해한다. 재판은 역사의 법정에서 끊임없이 검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두 권의 책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얘기한다.

최재천<변호사> cjc4u@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