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2판4판]한국이의 일기

5월 억수로 맑음. 오늘 수입 만원. 억수로 기분이 좋다.

오늘도 우리 엄마는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 하루 종일 가게일로 돈 벌기 바쁜 우리 엄마가 그나마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시간은 휴식시간이다. 그런데 매번 들어올 때마다 싱글벙글이다. 내가 몰래 엄마의 주머니를 훔쳐 봤더니 돈이 가득하다. 아니, 쉬는 시간에도 자식들을 위해 돈을 벌다니. 나는 감동을 크게 한번 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과연 어딜 가나 따라 나갔다. 엄마가 들어간 곳은 수도 나이트클럽. 아, 엄마는 ‘차차차’로 휴식하는구나. 나는 엄마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몰래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글쎄 그곳은 예술을 하는 회관이 아니라 맞고를 하는 곳이었다.

우리 엄마는 저쪽 경기상회 손씨 아줌마와 맞고를 치고 있었다. 손씨 아줌마도 그렇지, 우리 엄마 같은 고수와 맞고를 칠 생각을 하다니. 우리 엄마는 사실 요즘 가게일로 바빠서 그렇지 왕년에는 여의도 맞고판에서 잘 나가던 왕 아줌마다. 요즘도 가끔 여의도 맞고판에 가면 큰 소리 떵떵치고 온다. 물론 집으로 올 때에는 주머니가 불룩하다.

그런데 하수인 손씨 아줌마가 대들다니. 수도 나이트 웨이터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 전에는 손씨 아줌마가 조금 땄다고 맞고판에서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고 한다. 완전히 손털 때까지 일어설 수 없다는 만고의 맞고 진리를 무시하고 나가버리다니. 정말 말세다.

우리 엄마는 이 때문에 ‘서울 상회’나 ‘경기 상회’ 아줌마들은 ‘대권 시장’으로 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오늘 맞고판은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손씨 아줌마는 실력이 달리는지 뜬금없이 더 이상 우리 엄마와 맞고를 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와 온라인으로 맞고 한판 하겠다고 한다. 우리 아빠도 왕년에는 맞고판에서 왕자였다. 인재도 창도 쪽박을 찼다.

졸지에 부업을 잃어버린 우리 엄마는 쓸쓸히 맞고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가녀린 어깨위로 슬픔이 연기처럼 피어오를 때 사랑을 느끼면서 다가선 나를 향해 웃음을 던지면서 술잔을 부딪히며 찬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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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때 어쩔 수 없이 간만에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엄마. 돈을 안 벌어와도 좋으니 제발 따뜻한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세요. 엄마가 엇나가기 시작하면 우리 철없는 아빠를 누가 말려요. 안 그래도 우리 아빠가 요즘 큰맘 먹고 철들기 시작하는데….

<글 윤무영 그림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