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성공 키워드]개그맨 김·국·진

성급한 시대에, 눈에 띄는 어·눌·함

컴백 1년 만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아 여러 프로그램에 고정 진행자로 속속 캐스팅되고 있는 김국진. 5년의 공백 후 컴백했을 때도 그의 순수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경향신문>

문득 문득 궁금했다. 한참 인기 있던 시절 그를 섭외 못 해 안달하던 필자는, 5년 동안 한 번도 그의 존재를 잊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돌아올 텐데 그때가 되면 꼭 함께 일하고 싶었던 사람. 왜냐? 오가다 마주친 그 모습에서 ‘너무 착한 남자’의 후광을 읽었으니까!

다시 처음 그를 본 순간 드는 첫 인상은 ‘안간힘을 쓴다’는 표현이 딱 맞으려나. 그리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5년 만에 나타났을 때 김국진의 눈빛에서 불안함을 읽어냈던 시청자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뀐 방송 판도에 어색함을 표현하고, 적응하지 못한 시대의 뒤쳐짐이 또 하나의 개그 코드로 자리 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웃기려고 약은 전략을 쓰지 않고도 어눌하고 어수룩한 모습 하나만으로도 웃기는 사람, 컴백 1년 만에 지금은 제2, 제3의 전성기를 맞아 버라이어티프로그램에 고정 진행자로 속속 캐스팅되고 있다. 과연 그가 처음부터 좀 뻔뻔해지고, 좀 편안해졌어도 시청자들이 좋아했을까?

돌아온 김국진을 보며, 그의 순수함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데 안도가 들었다. 오랜 첫사랑을 몇 년이 지나 변하지 않은 모습을 봤을 때의 안도감이랄지.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칼질하는 개그 속에서, 속마음을 비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촌사람 특유의 쑥스러움은 반갑다. 게다가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캐릭터를 보며, 한없이 그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낯가리는 개그맨, 친해지면 진국
현존하는 개그맨 중에 가장 거짓말을 못 할 것 같은 사람.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안쓰러울 정도로 착한 사람. 시청자들의 측은지심을 제대로 파고드는 순수함이 있지만 알고 보면 절대 꺾을 수 없는 고집쟁이. 그것이 김국진의 매력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한다. 10년지기 이윤석과도 술 한 번 마신 게 전부고, 그와 밥 한 번 먹으려면 일부러 ‘일’을 만들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주변 동료 방송인도 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저 “착한 사람”이라거나 “낯을 좀 가리더라” 정도. 그를 두고 훈수를 두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고, 뜨겁게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함께 일한 시트콤 작가마저 미주알고주알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친분이 없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라고. “그런데 국진 오빤 참 웃기긴 웃겨. 가만히 있는데도 웃기달까.”

이제 절반은 적응이 되었다는 그의 표정에서는 조금씩 여유가 보였다. 뜸 들이는 개그 대신, 머리 꼬리 빼고 몸통부터 던지는 성급한 시대에, 5년 동안 쉬다 온 공백은 꽤 컸을 터. 재혼 계획이 없냐고 부추기는 김구라에게 “재혼 계획이 없다”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색하는 이 남자. 저러다 “녹화가 끝나면 어찌 서로 얼굴을 볼까” 싶을 정도로 치고받고, 전쟁통 같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곧이곧대로 착한 멘트를 일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입 밖에 ‘이혼’이란 단어를 꺼내기가 불편해보이고, 네티즌의 댓글을 일일이 다 확인하는 소심한 면모가 그대로 있지만, 그게 또 김국진의 매력이 아닐까.

한창 시절 그는 ‘테마게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뿐만 아니라 정극에서 출중한 연기 실력을 자랑하던 그는 작년, 시트콤 ‘코끼리’로 연기에 또 한 번 도전장을 냈다. 당시만 해도 컴백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첫 대본 리딩 때도 선글라스를 쓰고 조용히 와서 인사만 하고 리딩 후 조용히 사라졌다. 지인에 따르면, 5년 동안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을 정도로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했을 만큼 세상과 담을 쌓았기에 컴백에 대한 부담이 유달리 컸다고.(사람들의 인기를 녹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에게 대중과 떨어져 있는 공백 기간은 상당한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니 5년 만에 찾아온 이 기회가 어찌 고마우면서도 두렵지 않겠는가)

그렇게 내성적인 그도 시트콤 촬영 당시 슛만 들어가면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아이디어 제시로 컴백 후 방송에 얼마나 애착과 열정이 있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컴백 후 적어도 대인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달라졌다. 조금 더 문을 열고, 조금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독설로 유명한 MBC ‘라디오 스타’에 전격적으로 합류했을 때, 김국진은 변해버린 방송과 개그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은 김구라의 독설에도 맞받아칠 정도가 됐다. | MBC제공

그 일례로, MBC 드라마넷 ‘슈퍼스타 공작소’는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신인 아이돌 키우기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다. ‘명랑 히어로’ 녹화장에 ‘슈공’이 촬영을 갔을 때, 김국진만 슈공의 인터뷰 요청을 잘 받아줬다고 한다. 대가가 있는 것도, 유명 프로도 아니요, 다른 멤버들은 귀찮아하는 일임에도 유독 김국진은 신인들을 진심으로 격려해주고, 마음을 다해 대하는 모습에서 ‘슈공’ 스태프가 감동했다고 한다.

최고를 거머쥐기 위해서, 그리고 거머쥔 최고를 놓지 않기 위해서 잘 하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진정한 성장을 위해 열심히 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최고 전성기일 때의 아이돌이 전자라면, 요즘의 김국진은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웃음으로 포장된 삶의 페이소스
상처는 사람을 성숙하게 단련시킨다. 씁쓸한 페이소스를 유머로 승화시키는 김국진의 표정에서,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수련하고, 얼마나 상처를 통해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타고난 밝음이 아니라 슬픈 과정을 이겨낸 사람에게 보이는 밝음이랄까. 아픈 일을 반복해서 겪다보면 내성이 생겨, 절규하고 우는 대신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가끔 찾아드는 인생사의 쓴웃음을 힘이나 가식으로 숨기지 않고 편안하게 시청자에게 내보이는 김국진.

톱스타 성공 키워드

한 번도 이혼이나 개인사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그가, 몇 달 전 ‘황금어장’에서 이혼 후 심경을 털어놓았을 때, 그제야 ‘아, 이제 좀 편안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상처에 대면해서 자신과 마주할 때 비로소 그 상처는 아물어 가는 과정이리라. 어떤 일이건 마치고 나면 뭔가를 얻게 되는 법. 비록 그것이 상처와 투쟁의 과정이어도 그가 얻은 것은 삶을 대하는 또 하나의 태도일 것이다. 극복해나가고, 자신감을 찾아가는 김국진을 보며,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처를 잘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곡을 찔리면 주춤거리는 모양새도 웃기고, 골반 춤은 더 웃기고, 독설 사이에 소심하게 끼어드는 어눌한 말투도 매력덩어리니, 부디 힘내라, 김국진. 90년대 스타로 살아가는 2000년대 스타여.

<남미영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