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걸 그룹 대북심리전 애니메이션에서 힌트 얻었나

1980년대 휴전선 전방에 뿌려졌던 대북용 삐라.

시작은 한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의 보도였다. 곧 재개할 대북심리전에서 북한을 기겁하게끔 할 ‘핵폭탄’급 무기가 준비되고 있는데 핵폭탄급 무기는 ‘HD전광판에 걸 그룹’이라는 것이다. 이 매체가 전하는 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1~2㎞ 떨어진 곳에서 보이는 초대형 전광판을 활용해 문자·영상을 송출할 것이고, 소녀시대 및 원더걸스·티아라·애프터스쿨 등 걸 그룹 영상을 틀면 ‘전방의 북한 병사들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유혹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식을 들은 누리꾼의 반응은 엉뚱하다. 한 누리꾼은 말한다.

“기발한 생각을 해 냈다고 좋아할 만한 국방부 관계자 여러분, 솔직히 이야기해 주세요. 이거 한 병사가 반쯤 농담 삼아 한소리 듣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해서 곧장 기획서로 뽑아낸 거 맞죠? 지금쯤 난데없이 괜한 포상휴가가 생겨서 좋다고 할 그 병사는 틀림없는…덕후(오타구)입니다.”

‘덕후’ 이야기가 나오는 까닭은 군 당국이 내놓은 시나리오가 한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 애니메이션은 국내 지상파에서도 공중 방영한 적이 있는 <마크로스>다. 1984년 극장판으로 제작된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의 절정 부분을 보자. 아이돌 가수인 린민메이는 삼각관계 끝에 겪는 사랑의 좌절을 ‘노래에 대한 사랑’으로 초극한 뒤 자신의 연적이 번역해 낸 고래(古來)의 노래를 부르기로 결심한다. 우주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노래는 ‘문화에는 손대지 말라’는 유전자코드가 프로그램되어 있는 젠트라디 족의 심장을 울렁거리게 하고 무력화한다. 결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궤멸로부터 지구인들을 지켜 낸 것이다. 누리꾼은 군 당국의 대북심리전 계획에 ‘민메이 어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실 북한 사람들에게 한국의 아이돌 문화를 선보이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제 이효리 등이 활동한 핑클은 1999년 평양에서 공연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중계된 공연 실황을 보면 관객들이 경악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화충격은 컸던 것 같다. ‘민메이 어택’이 화제가 되자 1980년대 휴전선 대북심리전 방송에서 이선희의 노래를 튼다든가 하는 대중문화 소개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누리꾼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대북용 ‘삐라’의 수영복 아가씨(사진)도 마찬가지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언더그라운드 넷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합참 관계자에 따르면 “전광판을 사용한 대북심리전은 이전에도 있었으며 2004년에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알려진 것과 달리 전광판은 지금 당장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결정해도 수개월 뒤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었다. “‘민메이 어택’이라는 누리꾼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관계자는 공군 출신 소령이다. 그의 첫 반응. “그게 무슨 말이죠?” <마크로스> 스토리에 대해 설명하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아, <마크로스>는 봤습니다… 그래도 민메이는….” 애니메이션은 봤지만 ‘마니아’ 수준은 아니어서 잘 모른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기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진 않는다”면서 “대북 방송 콘텐츠에는 그 밖에도 다양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