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넷]솔직함 종결자

다음 아고라 즐보드에 ‘솔직함 종결자.jpg’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한 보신탕 집의 연혁사진. | 다음 아고라 즐보드

“○○○○종결자.jpg”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 건 한 1~2년 된 것 같다. 보통 앞에 붙은 ○○○○의 분야 또는 카테고리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서 더 이상 그 분야에서 견줄 대상이 없다는 뜻이다. 오늘 살펴볼 ‘솔직함 종결자.jpg’라는 이미지는 실은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이미지다. 찾아보니 2005년께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를 통해 최초로 유포되었던 것 같다. 한 보신탕집이 내건 식당의 연혁이다. “15평 가게에서 1969년 시작했다…”는 것은 보통 평범한 연혁 소개다. 그런데 1981년 7월, ‘가스안전공사의 안전시설상 수상’에서 고개가 갸웃하는데, 이듬해인 ‘1981년 8월 13일, 프로판가스 폭발, 10명 사망 38명 중경상, 주변 건축물 손상’이라는 무시무시한 내력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시 이 보신탕 집 내력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해 12월에는 가스업자가 실형을 받는다. 또 하나의 임팩트가 있다. 1987년, 88년 올림픽으로 혐오식품 선정. 당시 보신탕집들은 다 받은 탄압(?)이었는데, 떡하니 내력으로 올라가 있다. 역시 잘 나가던 보신탕집이 시골로 이전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괜히 저 1981년 사건 내력을 보게 되면 맛있게 먹던 손님도 밥맛이 싹 달아나지 않을까. 그 죽었다는 사람들이 다 식당 종업원은 아닐 테고 손님도 있었을 테니. 2월 7일, 아고라에 올라온 이미지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니 얼핏 보지 못했던 유머포인트 내력도 짚고 있다. 이 보신탕 집의 1992년 연혁은 아까 그 사고 관련이다. “1981년 사고 보상금, 합의금 완전 지불.” 11년 만에 그때 진 빚을 다 갚았다는 소리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에는 ‘프랑스 월드컵 팀 및 각국 선수단 문화체험 초청’이라는 연혁도 있다. 개고기 식문화와 관련,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드 바르도의 비난을 의식한 이벤트이리라. WIgott라는 누리꾼은 “좀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아예 감추고 속이는 식당보다는 훨씬 보기가 좋은 것 같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플리커에 올려진 이미지부터 이 연혁표 속 식당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다. 그런데 조금 유명한 집인가보다. 누리꾼들은 경기도 안양에 있는 모 보신탕집이라고 했다. 이 집의 장수민 사장(56)에게 연락해봤다. 창업자는 어머니 주명자씨(86). 2대째 영업이다. 어쨌든 솔직한 건 좋지만 조금 지나쳐 보이는 것도 있지 않나? ‘가스안전공사 안전시설상’은 정말 받은 건가. “일제 경보장치도 들여와 붙여놨었고, 시설도 대한민국에서 꼽을 정도로 잘해놨어요. 지금은 쓰면 안되지만 그런데 그때 5㎏짜리, 10㎏짜리 프로판가스통을 쓰다가….”

그 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려먹었다. 맨주먹으로 다시 시작했다. 당시 유명한 사건이었다. 각 신문 사회면에 크게 보도됐고, 일본의 아사히 신문엔 그 가스폭발사고를 패러디한 풍자만화도 실렸다. 풍자 이미지 밑에 “대한민국에는 보신탕탄이라는 위력적인 폭탄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지금도 그 만평이 실린 신문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연혁에서 가장 쓰기 싫었던 내력이 15평 가게에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가스폭발사건도 그렇고 창피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오시는 손님들이 저렇게 조그만 데서 시작했고, 또 저런 시련을 겪었는데 이렇게 큰 식당을 일궜다…라는 부분에서 자신감을 얻고 희망을 얻어갔으면 한다.” 듣고 보니 또 그럴 듯한 이야기다. 장사가 잘되는 비법을 알 것도 같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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