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대한 총구를 어디로 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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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지만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집을 경매에 넘긴 사례들이 빈발했다. 경제적 문제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도 속출했다. 어느 여성은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에 남편의 소총으로 자살했다. 같은 상황에 직면한 한 남성은 아내와 개를 총으로 죽인 다음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다. 그런데도 미국 시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 당신들의 나라>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 부키·1만3800원

<오! 당신들의 나라>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 부키·1만3800원

미국의 사회운동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그 무렵 쓴 어느 글에서 “총구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신용위기를 불러온 금융기관과 금융기관 종사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돈을 펑펑 쓰면서 평범한 채무자들의 피와 눈물로 배를 불리고 있다. 1930년대의 구닥다리 방식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월스트리트로 행진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2011년 가을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점령하라’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점령하라’ 운동이 에런라이크의 글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억눌린 분노가 그제서야 폭발한 것일 따름이다. 에런라이크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쓴 사회비평 에세이들을 모은 <오! 당신들의 나라>는 그 분노가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 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최상위 1%가 99%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가. 첫째, 최상층의 부는 최하층 저임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가 부자가 되는 데 드는 비용을 99%가 치러야 한다. 둘째, 최상위층은 정부 정책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꿔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킨다. 

사회구조가 이렇게 짜여 있으면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가난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 많은 돈이 드는 게 그 중 하나다. 가령 연소득 3만 달러 미만인 사람들은 자동차를 살 때 그 이상인 사람들에 비해 더 높은 대출이자를 물어야 한다. 자동차 보험료나 주택 대출금 이자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1000달러를 지불할 여력이 없어 매일 40달러를 모텔비로 써야 하는 주거빈곤층의 사례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른바 ‘빈곤의 고비용’이라는 역설이다.

<긍정의 배신> 같은 책을 통해 자기계발 담론의 함정을 파헤친 저자의 자기계발 비판은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같은 자기계발서에는 몇 가지 공통 코드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코드를 그대로 실행할 경우 매우 기만적이고 비윤리적인 상황을 자초하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그런 종류의 책들은 항상 긍정하는 자세로 살라고 말하는데, 이 지침을 따른다면 정리해고를 당하더라도 회사나 상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성공을 방해하는 태도가 된다. 

이런 기형적인 상황은 결국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낳는다. “빈곤층 및 한때 중산층이었던 누보 푸어(신빈곤층)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다수파가 되었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할 날도 머지 않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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