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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내시경]‘5월의 광주’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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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진 봄꽃의 계절 4월이 지나고, 푸르른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등 유난히 챙겨야 할 기념일이 많은 5월, 서로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주고받기도 바쁜 한 달이지만 5월에는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아픈 기억이 있다. 인생의 가장 푸르른 날을 역사에 빼앗긴 사람들의 비극, 바로 5·18 광주민주항쟁이다.

무언가 잊어서는 안 될 것, 잊혀져서는 안 될 것들을 자각하고 일깨우고자 하는 예술의 특성상, 5·18 민주항쟁은 그동안 시와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지난해 초연되어 좋은 평가를 받고, 다시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정경진 작, 고선웅 각색·연출의 <푸르른 날에> 역시 30년 전 광주의 가슴 아픈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5·18을 바라보는 시선과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어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을 끈다.

연극 <푸르른 날에>



<푸르른 날에>는 암자에서 수행중인 스님 여산이 옛 연인 정혜로부터 딸 운화의 청첩장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미 과거와 연을 끊은 그이지만 착잡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어느새 무대는 30년 전, 전남대 학생으로 야학을 이끌던 청년 오민호와 그의 연인 정혜의 ‘푸르른 날’로 돌아간다. 평화롭던 일상은 계엄군의 총소리 속에 깨지고, 시민군인 정혜의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도청으로 들어간 민호는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걸 목격하고서도 살아남기 위해 계엄군에 투항한다.

지독한 고문 앞에서 비겁하게 살아남은 민호는 그 죄책감과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을 겪고, 이미 임신 중이던 연인 정혜마저 버린 채 불가에 귀의한다. 그리고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잊고 싶은 과거를 평생 업으로 안고 살아온 여산과 아픈 상처를 부여안고 사연 많은 세월을 살아온 정혜. 공연 내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을 맞추지 않던 두 사람이 운화의 결혼식장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그 뒤로 푸르른 시절의 민호와 정혜가 서로 마주보는 가운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송창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연극 <푸르른 날에>

여산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 기억과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면서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1980년 5월, 그날의 광주가 아니라 ‘그날 이후’의 우리들이다.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품고 가기보다는 어떻게든 잊고 싶고, 피하고 싶어 하는 민호의 모습은 ‘5월의 광주’라는 역사적 상처 앞에서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맨 마지막 장면에서 오랜 세월 서로를 외면한 채 살아온 여산과 정혜가 드디어 서로 마주한 순간,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가슴을 치민다. 그들 뒤에 다소곳이 선 면사포 차림의 정혜와 민호의 모습은 30년 전 이루지 못한 그들의 사랑과 이제야 이루어진 과거와의 화해를 중의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자칫 무겁고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경쾌하고 과장된 어법을 사용해 효과적인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유머러스하게 희화화된 인물들과 신파조로 포장된 대사들이 ‘이미 익숙한 아픔’ 앞에 선 관객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오히려 작품에의 몰입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날 밤 도청’과 같이 묵직한 시선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지만 ‘5월의 광주’를 이렇듯 무겁지 않게, 거리낌 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푸르른 날에>는 충분히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5월 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김주연<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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