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의 눈]노출에 의한 소통의 심리

마음 생김새가 몸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몸, 내 옷차림이 내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

'옷을 입는 행동’을 하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침에 일어나면서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 입었던 옷을 벗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사회적 관습의 일부다. 마치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이 무대 의상을 걸치는 것처럼,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공적·사적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관객 삼아 자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려고 할 때 옷은 유용한 수단이 된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사회적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옷이 내 본 모습을 겹겹이 싸고 드러내지 않는 방패나 성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흔히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악수를 한다. 마음을 터놓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옷으로 은폐되지 않은 신체 부위, 즉 손으로 악수를 한다. 장갑을 끼지 않는 한, 손은 일상생활에서 드러나 있는 드문 신체 부위 중 하나다. 따라서 손을 맞잡는 행위인 악수는 상대에 대해 내가 공격 의사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친밀감을 형성하고 싶다는 의사의 전달이라 할 수 있다.

악수가 상대에게 공격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라면 단추를 끄르는 행동은 상대에 대한 개방감과 친밀감의 표현이다. 남성은 대부분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먼저 상의를 벗고 옷을 갈아입는다. 하루의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업적 협상 중에 윗옷의 단추를 푸는 행동은 상대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협상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윗옷 단추를 끄르고 있는 사람들은 단추를 잠그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의견의 합치를 볼 가능성이 훨씬 더 컸다. 생각이 호의적으로 바뀐 사람은 그에 따라 팔짱을 풀면서 본능적으로 윗옷 단추를 끄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서 개방적이거나 친근한 사람은 상대방 앞에서 윗옷 단추를 끄르거나 벗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상대로 하여금 긴장을 풀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의 신체나 자세, 그 사람의 마음,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구현 효과(embodiment effect)라고 말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Fritz Strack)은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볼펜을 입에 물고 만화책을 보도록 했다. 이때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는 치아로 볼펜을 물게 했다. 이것은 마치 웃음 짓는 표정과 같았다. 한편 다른 집단에는 입술로만 볼펜을 물게 했다. 이들은 동그랗게 입술을 모아 볼펜을 물어야 했다. 마치 토라진 듯 뾰로통하게 입을 내민 표정이 된다. 그런 후 두 집단에 현재의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볼펜을 치아로 문 사람들(웃음 짓는 표정)이 기분이 더 좋다고 응답했다. 또 그 상태로 책을 읽게 한 다음 얼마나 재미있는지 물어보았다. 책이 재미있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치아로 볼펜을 문 경우였다. 치아로 볼펜을 물어서 만든 억지 웃음이지만 이것에 일치하는 기분 좋은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곽금주의 눈

마음 생김새가 몸을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몸, 내 옷차림이 내 마음을 만들기도 한다. 개방적인 몸과 옷차림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감추는 의도적인 인상 조작과 차이가 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 감추고 싶은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이라 할 수 있다. 목까지 채운 답답한 셔츠보다 적당히 여유 있는 옷차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여름은, 어쩌면 형식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서로 터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