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이 만난 사람]경제개혁운동가 김상조 교수

“지금은 버블에 경고사인 줘야할 때”

9월15일이면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가 시작된 지 꼭 1년이 된다. 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타격을 누구보다 크게 받은 나라가 한국이다. 1년 전 우리 경제를 떠올려보면 악몽 같다. 환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바닥을 모른채 꺼져 가기만 하던 상황. 시중에는 돈이 안 돌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면서 사회 전체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이런 경제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U자형 또는 L자형으로 오래 지속될 것 같다는 비관론이 여기저기서 나와 국민을 한숨짓게 만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주식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부동산은 곳곳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는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대공황에 대한 우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쑥 들어갔다. 악몽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위기가 끝나긴 끝난 걸까. 앞으로 경제는 어떻게 흘러갈까.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흐름을 읽고 있겠지만 일반인들은 좀처럼 알 길이 없다.

이번 주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을 찾아간 것은 이 헷갈리고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해설을 들어보기 위해서다. 김 교수는 진보경제학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일방적 비관론이나 맹목적 낙관론을 동시에 경계하는 균형감 있는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김 교수의 대학 연구실에서 있었다.

리먼 사태 1년이 다 돼 가는 요즘 신문에는 연일 밝은 경제전망 기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기가 정말 끝난 건가요.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간 게 맞습니다. 지난해 비관론자들이 예상한 것만큼 충격이 오래가지는 않은 셈이죠. 1차적인 위기 국면은 분명 넘겼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이번 위기가 과거 대공황과 맞먹는 수준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이렇게들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위기를 이렇게 빨리 넘길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입니까.
“대외요인과 대내요인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대외요인을 보면 세계 모든 나라가 신속한 국제공조로 경기부양책을 쓴 게 주효했습니다. 1930년대 발발한 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지속된 까닭은 초기 국면에서 정책적 오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때 실패를 교훈 삼아 각국이 발빠르게 움직였죠. 대내요인은 우리 정부와 금융, 재벌이 3자 동맹을 이루어 움직인 겁니다. 정부가 방향을 잡으면 관치금융이 동원되고 여기에 재벌이 호응하는 형태였죠.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국 경제는 아직도 이 3자가 끌고 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 한 해였습니다.”

정부가 시장을 다스린 거네요. 그건 좋은 건가요, 나쁜 건가요.
“당장의 불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대외요인만 보아도 각국 정부가 재정과 금융에서 돈을 풀어 해결했거든요. 이게 버블을 가져온다는 것은 모든 경제학자가 우려하는 바입니다. 또 한국경제를 3자 동맹이 좌지우지한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강점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취약점입니다. 위기가 왔을 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되레 악화시켰거든요. 지금 각종 지표는 좋게 나타나는데 소비와 고용이 살아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럼 위기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조만간 2차 충격인 더블딥(일시회복 후 다시 침체하는 것)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올해 말까지 새 위기 상황은 없다고 보아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내년 경제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리먼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위기 극복이라 한다면 극복된 게 맞는데 문제는 그 상태가 과연 지속가능한가 하는 점이죠. 위기를 초래한 글로벌 임밸런스, 즉 세계경제의 불균형은 그대로 남아있고 오히려 심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출구전략이란 말이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잘 고안된 출구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전략은 안 보이고 위험만 가중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수단이 재정과 금융이라고 할 때 재정은 65%를 상반기에 집행해 하반기에는 쓸 여력이 없고, 남은 것은 금융밖에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타이밍을 이미 놓쳤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가 다시 위축될 우려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버블이 문제입니다. 주택담보대출이 한 달에 4조~5조원씩 늘어나고 있어요. 누가 보아도 비이성적인 행동이거든요. 이런 행동이 나오는 것은 적어도 당분간은 금리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시장 참가자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올해 안에는 금리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계속 증폭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얼마 전 이스라엘이 금융위기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LTV나 DTI 같은 부동산담보 대출규제 강화만으로는 미약합니다. 지금이라도 기준금리를 인상해 버블에 대한 경고사인을 보내야 합니다. 0.25%포인트 정도 올린다고 해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니거든요.”

“정부가 올해 안에는 금리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계속 증폭될 겁니다.”

금리를 정부 마음대로 주무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초 청와대 지하벙커에 들어가는 순간 독립성을 잃었습니다. 국가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정부와 은행이 협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벙커 회의에 한은 총재가 참석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겁니다.”

정부가 요즘 서민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가할 만하지 않나요.
“정권의 이념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단임제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주가와 경제성장률에 신경을 씁니다. 그게 직접적인 성과 지표이니까요. 주가를 올리고 성장률을 올리려면 재벌을 밀어주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경제정책이 재벌 중심적이 되는 까닭이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적 인기를 의식해야 하니까 서민을 위무하는 대책을 내놓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훨씬 실용적이에요. 단기적으로는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재정 문제 때문에 내년에 가면 한계에 봉착할 겁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지금 주식을 사면 1년 내 부자된다”고 해 비판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 되었어요. 이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시장가격 변수, 그러니까 금리나 환율 같은 것을 정부 당국자가 구체적으로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은 두말할 나위도 없죠. 결과적으로 맞았다고 해서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즈음에서 화제를 돌려보자. 올해는 김 교수가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경제개혁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10년 전 그는 피켓과 구호에 의존하는 종전의 시민운동과 달리 법과 제도에 근거해 기업의 위법 부당한 관행에 메스를 들이대는 전문가 운동을 선보였다. 그동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상법의 주주 권리조항은 그에 의해 대기업 총수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정의의 칼이 됐고, 우리 사회는 재벌의 지배구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됐다. 재벌들은 ‘김상조’란 이름만 들어도 긴장하는 시대가 됐다.

지금은 참여연대에서 분리돼 나왔죠? 기업이나 경제정책과 관련해 내는 논평을 보면 굉장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연구는 어떻게 하나요.
“제가 우리 단체의 대변인 역할을 해 돋보일 뿐 모든 것은 팀 작업의 결과입니다. 우리 팀에는 교수, 변호사, 회계사 등 다른 직종의 전문가 20여 명이 있어요. 누군가 이메일로 ‘이런 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하고 아이디어를 내면 변호사가 ‘그건 어느 법에 어떻게 돼 있다’, 회계사는 ‘그건 회계의 고전적 수법이다’ 하는 식으로 의견을 냅니다. 그게 모아지고 다듬어져서 공개 문건으로 나오는 거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어떻습니까.
“우리 팀의 핵심 모토는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자는 것입니다. 한국의 진보는 실패의 경험만 축적했거든요. 실패만 하면 자기 스스로 확신을 못하고, 그러면 대중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기업을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 절반가량은 이겼습니다. 막강한 법조팀을 운용하는 재벌에 맞서 이만큼 승소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자부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입니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재벌기업 경영진의 부당한 경영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시킨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때의 법원 판결문이 기업에 어디까지는 되고 어느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 됐습니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위법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 주식총수의 0.01%를 확보한 주주가 경영진에게 손해배상을 회사 대신 청구하는 소송이다. 승소를 해도 배상액이 회사에 돌아가는 만큼 원고에 실익이 없는 전형적인 공익소송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건희 회장 등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만큼 190억원을 배상하라는 확정판결을 내린 바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삼성을 힘들게 한 것은 얼마 전에 종료된 에버랜드 사건이지만 김 교수가 더욱 더 의미있게 여기는 사건은 이 공익소송이다.

13년을 끌어온 삼성 에버랜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에버랜드 사건과 삼성SDS 사건은 비상장 주식을 총수의 자식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아요. 그런데 에버랜드 건은 무죄, SDS 건은 유죄가 나왔거든요. 대법원에서 6대5 한 표 차이로 무죄가 됐다는 게 아쉽습니다.”

김 교수님이 TV토론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빨리 말하면서 논리에 빈틈이 없나’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나요. 글쎄요. 10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다 보니 모든 질문이 예상 가능하고, 그에 대한 모범답안을 늘 준비하기 때문아닐까요.”

유독 삼성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저보고 ‘삼성저격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억울합니다. 우리는 삼성만이 아니라 국내 100개 기업을 매일 모니터링합니다.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먼저 비공개로 질의서를 보냅니다. 그러면 대부분 응답을 해 와요. 그렇게 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해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고발하는 경우는 여기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질의해도 가타부타 답이 없습니다. 아예 대화 채널 자체가 없습니다. 소송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그래서입니다.”

물밑에서 비공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운동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이건 고려대 장하성 교수님이 처음부터 강조하신 건데요, 기업경영은 외부인이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공시자료만 보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가 뜻밖의 피해를 보는 기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장의 평판은 한 번 나빠지면 회복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반드시 비공개 질의를 먼저 합니다. 우리가 기업을 상대로 제기하는 모든 문제는 100% 그 과정을 거쳤다고 보면 됩니다.”

물밑에서 문제가 해결돼 끝나면 허무하지 않습니까. 무슨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면 서운할 것 같은데요.
“아까울 때도 있죠. 하지만 그쪽에서 성의를 보여 문제를 고쳤는데 그걸 드러내면 신뢰에 흠이 가지 않겠습니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가 많겠네요.
“그렇죠. 개별회사 얘기를 털어놓을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느낀 점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히 경직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업과 비공개 접촉을 통해 ‘이거 해결 안 하면 소송한다’고 몇 번이나 경고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소장을 낼 때까지 회장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요. 아무도 회장이 화를 낼 것 같은 보고는 하지 못하는 겁니다. 선진기업이 되려면 요원한 거죠.”

김 교수는 직함이 딱 두 개다. 한성대 교수직과 경제개혁연대 소장직. 유명 경제학 교수에겐 꽤 흔한 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도, 정부의 무슨 무슨 위원회 위원 자리도 그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거절하기 전에 제의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돈 안 되는 경제개혁 운동이 그의 천직이 된 셈이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

“제가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 세운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출직에는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정책을 펼치는 정부 당국자 자리라면 해볼 용의도 있는데 그런 제의는 안 오더군요. 더 열심히 운동해야죠. 10년 뒤에는 저 같은 시민단체 사람이 할 일 없는 경제 사회를 만드는 게 제 삶의 목표입니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사진·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