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한국을 도와준 나라에 고마움 전하고파”

유엔군한국전참전60주년기념사업회 박보희 추진위원장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한다. 태어날 때 울고, 부모가 죽었을 때 울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운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일생 동안 흘리는 눈물을 숫자로 헤아릴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남자가 쉽사리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여기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면 더 근사한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눈물은 누구나 흘리는 것이다. 특별한 뜻을 지니는 것은 세 번째 눈물이다. 공동체의 안전이나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책임감, 즉 애국심이나 이념을 말하고 있다.

올해는 한일병합 100주년, 6·25 한국전쟁 60주년, 4·19혁명 5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다.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많다 보니 도처에서 행사가 열리고 있다. 6월의 주제는 6·25 한국전쟁이 될 것이다. ‘세 번째 눈물’과 관련이 있는 이벤트다.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총재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80년을 사는 동안 확실히 세 번 운 것을 확인했다. 처음 눈물을 흘린 사실은 말로 이야기했고, 두 번째 눈물은 동영상으로 보았다. 세 번째 눈물은 인터뷰 중에 기자 앞에서 흘렸다. 그를 만난 것은 리틀엔젤스의 6·25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을 이끌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5월 26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3층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였다.

#첫 번째 눈물
박 총재는 유엔군한국전참전60주년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의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회장은 백선엽 전 육군 대장과 데니스 헤스터트 전 미국 하원 의장이다. 박 총재는 기념사업회의 이름으로 6·25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유엔군으로 참전한 16개국을 순회하며 참전 용사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감사 인사 및 기념공연을 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 60주년 기념행사를 구상하고 기획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사람도 60살이 되면 환갑이라고 해서 잔치를 하지 않습니까.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됐다는 것은 한 주기가 가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6·25전쟁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두 이념이 맞부딪친 첫 번째 전쟁이고, 유엔군이 참전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참전 군인의 한 사람으로서 60년이 되는 2010년을 뜻 깊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전국에 공연단을 보내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우리가 은혜를 아는 민족이요,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표시하느냐 고민했습니다. 지금 여러 가지 사업이 전개되고 있잖습니까. 지면을 통해 회고담을 발표하고 드라마도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나라에서만 자축할 게 아니라 우리를 도와준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장 좋은 방법이 예술단을 파견하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리틀엔젤스는 1962년 박 총재께서 직접 창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선명 선생께서 제안하고 제가 창설해 육성한 거죠. 이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 여러 곳을 갔습니다. 한 50개국을 갔을 겁니다. 그런 때마다 느낀 게 어디를 가든지 감동을 준다는 겁니다. 감동이 얼마나 진한가 하면요,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아요. 참전 군인뿐만이 아니라 부인이라든지 일반 관객도 감동을 합니다.”

왜 감동한다고 생각합니까.
“첫째는 어린 아이들이라는 겁니다. 어린 아이들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어린 아이들을 미워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돈이나 명예를 생각하고 이성 관계에 빠질 나이가 아니잖아요. 오로지 태극기의 명예를 위해 춤추고 노래합니다. 100% 한국적인 스토리와 한국적인 음악으로 말입니다. 내레이션으로 배경 설명을 하고 역동적인 공연으로 무대를 꾸미기 때문에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요. 이런 기법을 써서 40년 동안 공연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이걸 그대로 가지고 나갈 것입니다.”

박 총재는 1950년 6월 1일 육군사관학교 2기생으로 입교했다. 첫 4년제 사관생도의 꿈은 한 달도 안 돼 터진 6·25전쟁으로 물거품이 됐다. 그를 비롯한 300여 명의 동기생은 총 한 번 쏴보지 못하고 전장에 투입됐다.

6·25 때는 일선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전장을 누볐겠네요.
“소위에서 대위까지로 싸웠으니까…. 저 같은 사람이 살아 있는 건 기적이에요.”

참혹한 상황을 많이 겪었겠습니다.
“백마고지 전투 때 9사단 28연대 중대장이었어요. 고지를 14번 빼앗기고 15번째 밀고 올라가서 점령한 게 마지막이었죠. 날이 밝을 때까지 방어를 하면 이놈들이 더 올라오지 않거든요. 아침에 보면 생선을 잡아다 그물에서 쏟아 놓은 것처럼 첩첩이 시체가 쌓여 있어요. 참 인해전술이라는 걸 많이 경험했죠.”

순회공연 프로그램을 보니 첫 행사를 미국 노퍽에서 하더군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 내외의 묘지가 있는 곳이죠. 6·25전쟁의 역사를 보면요, 맥아더 원수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생존할 수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맥아더 원수는 6월 29일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한강변에서 불타는 서울을 바라보고 미국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상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지상군 투입을 요청하는 전문을 기안했습니다.”

제공권이 북에 의해 장악된 상황에서 공중전을 하면서 서울에 와 전황을 둘러보고 지상군 투입을 관철시킨 맥아더 원수의 투지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는 게 박 총재의 주장이다.

“그래서 일본에 있던 24사단의 특공대 375명을 먼저 급송했어요. 그게 스미스 특공대예요. 어떻게든지 미군이 참전한다는 것을 빨리 알려 함부로 덤비지 마라는 위협도 하고 지연작전도 해야겠다는 거였죠. 그때 저희가 후퇴하고 있었는데 스미스 특공대를 오산에서 만났어요. 미군 군복을 입은 코 크고 얼굴 허연 군인들이 오는 걸 보고 그 자리에 철퍽 주저앉았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아, 이제는 살 수 있겠다, 미군이 함께 싸워 주면 희망이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한 거죠.”

#두 번째 눈물
28년 뒤에 박 총재는 미국 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의 청문회에 증인으로 소환됐다. 1978년 48세의 나이로 이른바 ‘코리아게이트’(일명 박동선 사건) 청문회에 나가 8선의 거물 정치인인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에게 맹공을 퍼붓는 장면이 영상으로 전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우리 조국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본인도 그 전쟁에서 싸웠습니다. 수백만 국민이 죽거나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우리들은 또다시 이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박 총재는 미군 철수와 통일교 탄압의 부당성을 강하게 성토한 뒤 “위원장, 원한다면 내 목을 치십시오. 그러나 귀하는 본인의 정신과 영혼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로 연설을 끝냈다. 카메라는 이윽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하는 그의 모습을 비췄다.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동영상에 담긴 내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바쁘게 사는 겁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나이 먹을 시간도 없고 죽을 시간도 없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이면서 공산권과의 관계 개선, 나아가 대북 지원에도 앞장섰습니다. 최근 천안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어려워졌는데 통일그룹에서 하는 평화자동차라든가 보통강호텔과 같은 대북사업은 어떻습니까.
“우리 정부에서 대북 지원이라든지 경협을 끊는다고 하는데 평화자동차와 보통강호텔 경영은 그대로 유지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경협, 한국 기업이 정부의 지원을 얻어서 들어가는 경협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 불행한 사태입니다. 북한에도 과잉 충성자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큰 손해를 가져올 것입니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게 좋겠습니까.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방 좋은 조치가 있을 수 없죠.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히 우리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문선명 총재는 자주 뵙습니까.
“예, 어제 저녁에도 뵙고 왔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건강은 ‘초건강’이고요, 다만 허리가 약하셔서 걷는데 부축이 필요합니다. 그것 외에는 8시간, 10시간 서서 강연할 정도로 강건하십니다. 백세 건강은 맡아놓은 거고 지금 120세까지 사신다고 그러십니다.”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후계 구도에 대해서….

“이미 결정이 됐습니다. 중심이 되는 교회 운영은 막내아들 되는 문형진 목사가 맡기로 이미 결정돼 있어요. 아주 놀라운 종교가예요. 대한민국 도인치고 이분처럼 도를 닦는 분이 없습니다. 지금도 꼭 오전 2시 반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참선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합니다. 타고난 종교가예요.”

통일교의 최고 원로로서 교회의 앞날이라든가 비전에 대해 말한다면….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통일교회는 기독교의 한 교파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국민연합이다, 가정연합이다, 통일기독교신령협회다 하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예산과 자금을 문화사업, 구호사업 등과 같은 사회운동에다 썼습니다. 이제부터는 포교 중심으로 나갈 겁니다. 교리는 딴 게 없습니다. 남을 위해 살아라, 즉 이타주의입니다.”

#세 번째 눈물
이타주의와 6·25 참전 용사에 대한 보은. 박 총재가 지향하는 바와 구체적인 활동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 번째 눈물을 보고서야 그 연결점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친구를 위해 내 생명을 버리는 것 이상으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친구를 위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은 고귀한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는 애국종교입니다. 살상하는 것이 싫어서 군대 가는 것을 피하는 종교도 있지만 통일교회는 정반대입니다. 나라를 위해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일종의 순교로 봅니다.”

참전 용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도 그런 정신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초인종주의입니다.”

한국전에 참전한 분들의 4분의 1 정도가 생존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참전한 숫자가 미국만 175만명이 넘습니다. 80세가 다 됐죠. 제가 19살(1930년 음력 8월생으로 6·25 발발 당시 만 20세가 안 됐다)에 싸움을 시작했으니까 거의가 제 나이예요. 미국의 경우 4분의 3 정도는 이미 작고하고 35만~50만명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파병 숫자가 적으니까 살아 있는 숫자도 적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이 5만4000명 정도 됩니다. 그 유가족이 있지 않겠습니까. 부인들이 있고 아들딸들이 있고 손자들이 있고….”

급기야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에… 와서 싸워 준 사람들을 생각하면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습니다. (눈물을 훔친 뒤) 저도 싸웠으니까 알죠. 자기 나라를 지키는 것과 똑같은 충성심으로 싸워 주었어요. 결코 꾀를 부리지 않았어요. 너희들 전쟁인데 왜 여기 와서 죽어야 되느냐, 이런 표현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생소한 나라였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를 위해 자기 나이를 속여 가면서 입대해 싸우다가 중공군의 포로가 돼 학살당한 사람도 있었어요.”

이번 행사의 취지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참전국 가운데 에티오피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더 잘살죠.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에는 빈손으로 가기가 민망할 정도예요. 6·25 때 참전한 군인들이 지금 부락을 만들어 함께 살고 있다고도 해요. 현재 예산으로는 거기(경제적인 보답)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국가 지원을 받거나 민간에서 염출해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념사업회는 6월 미국·캐나다·콜롬비아 등 북·남미 지역을 순회한 뒤 11월에 뉴질랜드·태국·필리핀·호주 등 태평양 지역의 참전국을 찾는다.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와 유럽 지역 순회공연도 내년 1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순회공연 외에 다른 특별한 계획도 있습니까.
“문 총재께서 절대로 16개국만 돌고 끝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파병국 외에도 5개 의무지원국과 20개 물자지원국이 있지 않습니까. 41개국을 다 가라는 겁니다. 잘할지 모르겠지만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순회공연을 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 생각입니까.
“고맙다는 게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는 세계 평화를 위해 서로 협조하자는 것이죠. 앞으로는 세계대전이나 큰 전쟁이 일어나기 어려울 겁니다.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은 국가 우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친구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16개국, 나아가 41개국을 먼저 껴안는 것입니다.”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