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쉼 없이 두리번거리게 하는 ‘동묘벼룩시장’

저 8,90년대 ‘황학동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먹고 살다 청계천 복원사업에 의해 밀려난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말 벼룩시장. 이곳에는 복잡해 보이지만 다양한 삶들이 연결되어 있는 골목들이 있고, 그 사이를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쉬고, 얘기하고, 다시 걷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복잡한 질서’가 도시를 지탱케 하는 힘이다.

주말이면 장이 선다. 사실 ‘장이 선다’는 표현은 소읍의 5일장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화려하면서도 번잡한 동대문 인근의 어느 구역을 가리키며 쓰고 있다. 동묘 일대가 그곳이다.

동묘는 동관왕묘(東關王廟)를 줄인 것으로 중국 고전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모시는 묘당이다. 종로구 숭인동에 있으며 서울시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유래는 조선 중기 선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 두 차례 왜란 때 관우의 혼령이 나타나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하여 묘를 건립했다. 명나라에서 건립기금과 외교문서까지 보내면서 강력하게 요구하여 동대문 밖에 터를 잡아 관왕묘를 세웠으니 선조 35년(1602)의 일이다. 그 이후 동묘는 일종의 종교적 사당으로 중시되었고 그런 기풍에 의해 한때는 북묘, 서묘까지 세워졌다.

동묘 벼룩시장의 모습. | 정윤수

MB의 불도저 개발에 밀려난 좌판들
물론 주말에 크게 열리는 동묘의 벼룩시장은 위와 같은 과거의 역사와는 무관하다. 이 복잡하고 어수선한 벼룩시장은 동시에 기묘한 흥미와 잔잔한 웃음을 퍼트린다.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는 도시인이라 해도 주말의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오히려 사람들 북적거리는 소리에 정겨움을 느낄 정도다. 물건값 흥정하는 데 짜증을 내는 도시인이라 해도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일부러 좌판의 주인들과 말을 섞게 된다. 일을 마치면 서둘러 그 장소를 벗어나고 싶은 게 도시인의 정서이지만 주말의 동묘 벼룩시장에서는 일부러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느릿느릿 걷고, 쉬고, 구경하고, 다시 걷는다.

벼룩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에 의해 밀려난 노점상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저 80, 90년대에 청계천 7가, 8가 일대 즉 옛 명칭으로 한다면 ‘황학동 벼룩시장’을 중심으로 먹고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불도저 공사로 인하여 청계천 일대가 상전벽해되고 그 거리와 골목의 틈에 붙어 살던 사람들이 전면적으로 화려해진 곳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일단 그 대안으로 송파구 가락동의 가든파이브가 제시되었다.

청계천에서 가든파이브로의 이주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도드라졌다. 서울시의 ‘지원정책’에 의해 청계천을 떠나 가든파이브에 입주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분양가와 임대자격 등이 여의치 않았다. 많은 상인들이 흡족한 조건과 안정된 자격으로 입주하기 어려웠다.

다음으로는 상권. 청계천 일대는 멀리 소급하자면, 조선시대 운종가의 연원까지 이어지는 오래된 상권이다. 광교 지나 청계천 입구에서 저 7가, 8가까지 이르는 청계천 일대는 ‘이쑤시개에서 비행기까지’ 만들어낸다는 다소 과장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삶의 상권이었다. 대로도 상권이었고 골목도 상권이었고 한 평도 안 되는 좌판도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꼭 필요해서 만들어낸 역사적 상권이었다. 이를 세련되지만 급조한 가든파이브가 대체하기는 어려웠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가든파이브. | 정윤수

질경이처럼 살아남은 불가사의한 힘
마지막으로 도심지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같은 맥락의 말이지만, 삼류 비디오까지 팔던 세운상가에서 중고 음반을 살 수 있던 황학동에 이르는 청계천에는 어떤 미묘한, 멀미나는, 삶의 냄새가 있었다. 이를 근사하게 들어선, 그러나 일련번호에 의해 기계적으로 배치된 가든파이브가 재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리어카에 좌판에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서 먹고 살던 거리의 상인들로서는 가든파이브 입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압도적인 기세로 밀어붙인 청계천 복원사업의 완공 이후에도, 그 언저리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여 배회하다가, 마침내 동묘앞 주말 벼룩시장을 만들어냈다. 주중에는 상가들이 영업을 하고 점포들이 문을 열지만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 그렇게 하여 주말의 좌판 벼룩시장이 열릴 수 있었다. 마치 부풀어오른 풍선을 꾹 누르면 어느 쪽으로든 삶의 공기가 악착같이 옆으로 삐져나오는 것처럼, 동묘앞 벼룩시장의 좌판들은 도심지 개발이라는 강력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질경이처럼 뻗어나온 어떤 힘이다.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으로 유명한 제인 제이콥스는 20세기 중엽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도시 미화’ 현상, 즉 정교한 구획 분리와 직선의 가로 조성 등을 비판하면서 이는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를 제한하고 자생적이며 복합적인 삶의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비판만 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가 살벌한 직선과 압도적인 마천루로 급변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오늘날 대도시 군데군데 인간적 공간이 남아 있고, 다채롭고 다양한 삶들이 뒤섞여 있는 데는 제인 제이콥스의 역할이 컸다.

정윤수의 도시 이미지 읽기

그녀는 “오래된 도시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곳이라면 어디나 외견상의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에 불가사의한 질서, 복잡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쉼없이 두리번거리게 하는 도시의 길들, 복잡해 보이지만 다양한 삶들이 연결되어 있는 골목들, 그 사이를 두리번거리면서 걷고, 쉬고, 얘기하고, 다시 걷는 사람들. 이런 ‘복잡한 질서’가 도시를 지탱케 하는 힘이다. 동묘앞 벼룩시장이 그런 곳이다. 선거 때만 나타나서 국밥 한 그릇 억지로 먹고는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을 물건을 생색내듯이 사는 정치꾼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공간이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