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한국의 광고 천재’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

“세계 놀라게 할 기후변화 이벤트 준비”

전 세계의 똥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찾았다. 영락없이 똥이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혐오스러워서는 안 된다. 서울과 미국 뉴욕에서 별난 똥 수색전이 벌어졌다. 그렇게 양쪽에서 낮과 밤을 새워 마침내 선택된 코끼리 똥! 이걸 어디에 쓰나. 얼마 후… 참새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그 앞에 서 있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을 때면 덴마크 코펜하겐 벨라센터에 ‘코끼리 똥 포스터’가 내걸릴 것이다.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105개국 정상과 2만여 명의 정부 및 민간 대표단을 위한 광고 퍼포먼스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코끼리가 싼 똥을 참새가 치울 수 없다. 온실가스 감축은 이를 많이 배출하는 큰 나라가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의 성패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절반 가까이를 배출하는 미국과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해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꼬여 있다고 하지만 이를 단번에 잘라낼 칼을 갖고 있는 것이 두 나라다. 포스터 속의 거대한 똥은 코끼리의 장 속에 정체돼 있던 기후변화의 숙변을 시원하게 배설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미국 코끼리와 중국 코끼리는 이 똥을 나 몰라라 할 것인가.
당돌하게도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연출한 이는 20대 젊은이다. 명함을 받아보니 이름이 없다. ‘이제석광고연구소’라는 여덟 글자뿐이고, 하단에 뉴욕 전화번호와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주소만 달랑 있다. 이제석이라는 이름 자체가 조직이고 브랜드라는 걸까. 직함이 없어 물어보니 대표나 소장 아무 것이든 상관없단다. 그냥 이 대표라고 부르자.

어떻게 해서 코펜하겐에 가게 됐습니까.
“환경재단이 민간 참가단을 구성해 기후변화회의에 가는데 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기후변화 문제는 제 관심사이기도 해서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어떤 작품을 가지고 갑니까.
“코끼리 똥 광고 있잖아요. ‘많이 싼 놈이 치워라’ ‘많이 더럽혔으니까 치워라’는 얘긴데, 메시지가 강하니까 카피는 부드럽게 했어요. 기후변화 문제는 큰 나라가 나서서 작은 나라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죠. 자동차 배기통과 운전석을 호스로 연결한 설치물도 준비했어요. 자기가 내뿜은 배기가스를 자기가 마신다는 거죠.”

지난 4~6월 세계 광고상을 휩쓸어 화제가 된 반전 포스터와 비슷하네요.
“맞아요. 제가 작가의 길을 걷는다면 ‘돌고 돈다’는 컨셉트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이 주제를 평생 보여 주는 일을 하는 거죠.”
‘뿌린 대로 거두리라(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는 영어권 속담을 카피 삼아 만든 이 대표의 반전 포스터를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포스터를 전봇대에 부착했을 때 미군 병사가 겨눈 총구가 자신의 뒤통수에 오도록 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국제 광고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세계 광고계에서는 뉴욕 페스티벌과 ‘광고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클리오 광고제, 칸 국제광고제를 3대 광고제로 꼽는다. 여기에 뉴욕 원쇼페스티벌과 영국 광고디자인공모전인 D&AD를 더해 5대 광고제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뉴욕 빅앤트사에 근무하면서 이 작품 하나로 5대 광고제를 비롯해 12개의 상을 받았다.

한 작품이 주요 상을 한꺼번에 받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반전 포스터는 지금까지 받은 50여 개 수상작 가운데서도 대표작이라고 해도 괜찮겠습니까.
“중복 수상은 피하는 게 관례지만 광고제가 한꺼번에 열리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반전캠페인 작품은 가장 많이 떴고, 가장 애정이 갑니다. 제가 가장 공들여 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얼마나 공을 들였습니까.
“1년 동안 작업한 겁니다. 전봇대에 두르는 걸 생각하는 데 6개월, 제작하는 데 4개월이 걸렸어요. 뉴욕의 전봇대란 전봇대는 다 찾아다니며 사이즈를 쟀고요. 그게 힘들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잠자고 생각하는 게 늘 그것이었다는 거죠. 크리스마스나 연말도 제 생활에서 지웠어요. 미국은 연말이 되면 시내에 불이 꺼지고 조용합니다. 죽음의 도시에서 식은 커피와 딱딱한 베이글을 먹으면서 혼자 작업했습니다. 화면의 점, 행위 하나하나를 맞춰야 했어요. 작품이 완성될 때 혼이 쑥 빠지는 느낌, 마치 출산하는 기분이었어요.”
‘한국의 광고 천재’ ‘뉴욕을 놀라게 한 한국인’이라는 찬사가 허튼소리가 아니라는 건 그의 작품이 말해 준다. 세계 광고제를 석권한 것 외에도 지난해 맨해튼에 내걸린 독도 게릴라 광고라든가 올해 영남일보에 실은 ‘이불신문’ 광고,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 광고 등은 그의 실력과 작품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 단편적인 예에 불과하다. 그의 광고는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놀랍고 강렬하다. 그런 영감과 구성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생산이나 소비도 큰 부분이지만 그보다는 생각하고 느끼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주는 게 더 크다고 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가치가 있는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합니다. 그걸 일깨우는 게 제 광고예요.”

상을 많이 받은 비결은 무엇입니까.
“언어를 초월하는 뜻과 개념인 거죠. 우리나라 문학이 좋은 작품은 많은데 노벨문학상이 안 나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언어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수식과 포장은 다 버리고 언어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깁니다. 간질간질한 것은 글로벌하지 않지요. 언어적 간지러움에 집착하지 않고 흑백이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언어를 씁니다. 그러면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도 제 광고를 보고서 똑같은 느낌을 받는 거죠.”

자신 있게 내놓은 작품이 떨어진 경우는 없었습니까.
“되겠다고 생각한 작품은 거의 됐거든요. 좋은 작품은 누구에게나 인정받아야 되는 거니까 우선 제 마음에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죠. 5개 출품하면 4개 정도가 됐어요. 80%니까 괜찮은 승률 아닙니까. 지금 감이 최고조에 올라 있습니다. 제가 작업하는 의자는 전기의자예요. 100만 볼트 전류의 희열을 느낍니다. 작업이 좋을 때는 전기가 팍 와요. 타자가 홈런을 때릴 때, 낚시꾼이 월척을 챌 때의 감이죠. 그 맛에 광고를 합니다.”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이 대표의 재능과 원칙은 국내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 재학 중 국내 광고상에 여러 번 출품했지만 단 한 차례도 입상하지 못했다. 졸업 후 국내 광고대행사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했다. 입시학원 강사를 하고 동네 간판 그리는 일에 나섰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안에서 철저히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그의 눈을 밖으로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는 1년 준비 끝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3학년에 편입했다.

광고로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기까지 곡절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림에 소질을 발견하고 취미를 붙인 게 언제부터죠.
“인생에서 큰 전환점은 분노 아니면 칭찬이죠. 원래는 개를 좋아해 수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한꺼번에 네 마리나 키웠으니까요. 그림도 좋아하긴 했지만 주위에서 ‘밥 빌어 처먹는다’고 하잖아요. 특히 남자가 말이죠.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 선생님이 바람을 넣은 거죠.”

지난해 독도 게릴라 광고가 국내에서도 화제로 됐는데, 공익광고 쪽으로 활동을 특히 많이 하더군요.
“사실 저를 움직인 더 큰 힘은 분노예요. 그때 부시 행정부 시절이었는데 독도 표기를 바꿨잖습니까. 그 소식을 접하고 분노했어요. 더 심한 것도 하려고 했는데 국가 이미지 때문에 그 정도로 참은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인을 천사로 알거든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독도 게릴라 광고에는 ‘일본’이나 ‘독도’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욱일승천기로 복면을 한 괴한이 담을 넘는 모습 아래 ‘섬 도둑 멈춰라(Stop island thief)’는 카피가 전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또한 공익광고의 묘미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고, 클라이언트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광고비에 쓰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직업 속성에 회의를 품던 그에게 공익광고는 새로운 눈을 열어 주었다.

‘광고는 사기다’ ‘광고는 누가 누가 거짓말을 잘하나의 경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상업광고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제 모토가 광고를 해서 사람들한테 행복을 주자는 거예요. 상업광고도 공익광고처럼 하려고 해요. 스크랩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포스터를 떼서 자기 방에 붙여 놓을 수 있는 광고를 하겠다는 거죠. 저희한테 유혹도 많아요. 그러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까지 광고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요란하게 해서 눈길을 끌거나 세뇌시켜 상품을 구입하게 하는 건 지양합니다. 그런 건 일종의 시각공해죠. 10명이 피해를 보더라도 2명만 사면 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상도나 윤리를 지키지 않고 팔고 보자는 것은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단명시킬 뿐입니다.”

어떻게 보면 원칙적인 접근이고, 오히려 보수적인 방식처럼 보이는데요.
“신발이나 햄버거를 파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의식을 개혁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생산이나 소비도 큰 부분이지만 그보다는 생각하고 느끼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 주는 게 더 크다고 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가치가 있는 것과 비싼 것을 혼동합니다. 그걸 일깨우는 게 제 광고예요. 그런 게 없으면 금방 지칠 수밖에 없어요.”

광고도 일종의 사회운동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공익광고는 사람이 사는 것, 상업광고는 사람이 사는 것 가운데 사고파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봐요. 둘 다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기쁨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광고가 세일즈라고 하는데 저는 더 큰 개념으로 봅니다. 소통의 의미가 있고, 판매도 장기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신종플루를 예방하는 손소독제 광고보다는 ‘손 씻어라’는 광고가 진짜지요. 대중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것이 먼저지 판매는 다음의 문제라고 봐요.”

기후변화 문제도 그런 차원입니까.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한국과 미국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한국은 일회용품, 산성비, 대기오염, 오존층 파괴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기후변화 문제에는 둔감한 것 같아요. 미국은 일회용품에 관해서는 개념이 없고, 비도 마구 맞고 다니며, 쓰레기봉투도 안 쓰죠. 반면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인식은 한국보다 높아요. 제가 첫 상을 받은 작품의 주제가 대기오염이잖아요. 지구온난화를 갖고도 상을 두 개 받았죠. 리서치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도 기후변화 문제를 일이나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삼을 겁니까.
“이번에는 사실 시간이 촉박해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올해 준비해서 내년에 핵폭탄급 이벤트를 할 계획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할 대형 사고를 칠 겁니다.”
경력으로 보면 풋내기나 다름없지만 광고에 대한 이 대표의 소신은 거침없고 확고하다. 그의 프로 광고계 경력은 2년이 채 되지 않는다. SVA를 졸업한 게 2008년 초이고, 나이도 만 27세에 불과하다. 작품에는 젊은 재기가 번득이고, 삶과 활동은 기성 조직이나 방식을 따르지 않는 신세대 특유의 자신감과 자유분방함이 넘쳐나지만 이런 것들이 치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어느 샌가 사회 초년병과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왜 그럴까.

SVA를 졸업하고 어떤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어떤 걸 배웠습니까.
“JWT는 미국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지요. 거기서 한 시즌 동안 견습을 했어요. BBDO는 SVA 재학 중에 주 4회 파트타임으로 일했고요. FCB는 100년 전통의 회사로, 이곳에서 1년 동안 풀타임 근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빅앤트에 6개월 정도 있었어요.”

BBDO는 특별히 근무하고 싶었던 회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광고계의 슈퍼스타들이 있는 곳이죠. 거기서 아주 많이 배웠습니다. 평생 알지 못할 것들의 비밀을 대가한테서 배웠죠. 대가에 이르기까지는 대단히 복잡하고 힘들지만 정점에 올라가면 아주 단순합니다. 검도는 손목치기, 머리치기, 허리치기의 세 가지 동작이 전부입니다. 이 세 가지로 모든 걸 하지 않습니까. 듀실지오라는 브라질 스승의 얘기가 단순하게 만들라는 것이었죠. 정말 쉽게 만들더군요.”

국내외 광고회사에서 제의가 많을 텐데요. 큰 조직에서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이라도 배울 게 있으면 대가 밑으로 들어가고 싶죠. 물론 국내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광고인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내가 꿈꾸는 완벽한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빅앤트를 나온 것도 내가 대장이 되지 않고서는 그런 조직을 만들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죠. 세계가 인정하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석광고연구소가 그런 조직을 지향하는 겁니까.
“미국에 ‘제스키소셜캠페인(Jeski Social Campaign)’이라는 제 조직이 있습니다. 사회 관련 공익·정치 캠페인을 시작했고, 상업광고도 일부 합니다. 한국에는 몇 가지 조건이 안 맞아서 당장 할 생각은 없었는데 여러 곳에서 자꾸 요청이 와서 연구소를 냈어요. 그런데 일반 광고회사와는 좀 달라요. 근무는 월급제가 아니라 프로젝트 베이스로 합니다. 10명도 안 되는 최소한의 관리직이 있고, 나머지는 필요한 때마다 계약직으로 쓰는 형태죠. 한 공장에 갇혀 있으면 창의력이 떨어지고, 조직 안에서 계급이 생기니까요.”

광고학교를 만든다는 얘기도 있는데….
“내년 봄에 광고교육원을 만들 계획이었죠. 등록금을 안 받는 대신 배운 기술로 사회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거지요. 도제나 품앗이 같은 방식입니다. 저도 스승 일을 도와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국내 기업과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글로벌하게 진출하려면 제가 도와주고 싶은 부분은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관계 설정은 파트너십으로 하고 싶어요. 저는 국내 세팅을 끝내면 해외시장으로 나갑니다. 국내는 국내대로 해외는 해외대로 바닥이 다르니까요. 국내에는 대가가 많고, 저는 국내에서 패배자입니다. 국내 승리자는 국내 승리자대로 인정받아야 하는 거죠. 요즘 세계 최고를 좋아하는데 해외파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스스로를 아트디렉터라고 생각합니까, 광고기획자라고 생각합니까.
“광고로 말한다면 태생은 아트디렉터지만 광고기획자가 더 맞는 표현 같아요. 더 얘기하면 광고장이라기보다 개념예술가를 지향합니다. 개념예술의 결과물을 광고에 활용하는 것이죠.”

<글·신동호 기획위원><사진·김석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