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최저임금으로 산다는 것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보여준 경쾌한 독설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어느날 그가 한 유명잡지 편집장과 밥을 먹고 있을 때 빈곤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시간당 6~7달러의 임금만 받고 살 수 있을까. 에런라이크는 “누가 옛날 식으로 기자 정신을 발휘해 직접 현장에서 체험취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장이 그 말을 낚아챘다. “당신이 해야죠.” 당시 50대 후반이던 에런라이크가 1998~2000년 사이에 미국 여러 도시에서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간병인, 월마트 판매원으로 일한 체험을 담은 <노동의 배신>은 이렇게 시작됐다.

<노동의 배신><br>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부키·1만4800원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부키·1만4800원

여기에는 한 가지 배경이 있다. 미국 정부는 1996년 복지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를 변경했다. 수급기간을 5년 이내로 제한하고 수급 후 2년째부터는 의무적으로 취업하도록 했다. “취업이야말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티켓이며, 복지 수급자의 발목을 잡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떨치고 나서서 직장을 구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정책이다. 에런라이크의 ‘최저임금으로 살아보기’ 체험은 이것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주장인지를 검증해본 것이다.

빈곤층이 일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결론을 말하면, 그렇지 않다. 빈곤층은 가난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일해도 가난한 상태, 즉 ‘워킹푸어’로 처지가 바뀔 뿐이다. 에런라이크는 체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이유를 따져본다.

먼저 주택 임대료가 너무 높다. 1960년대 초반 주거비는 평균적인 가계 지출에서 24%를 차지했는데, 1999년에는 37%로 급등했다. 반면 임금 상승률은 주거비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다. 이 와중에 고용주들은 필사적으로 임금인상을 막으려 한다. 그럼 더 높은 임금을 주는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비숙련 저임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직업군의 임금수준이 별반 다르지도 않을 뿐더러, 일을 두 군데 이상 하지 않으면 생활이 빠듯한 빈곤층에게는 임금을 비교할 수 있는 여유나 정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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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빈곤의 이유를 따져보는 것보다 더 절박한 일은 빈곤을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안이한 의식을 바꾸는 일이다. 저자는 빈곤이란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낮은 수준의 처벌을 끊임없이 받는” 상태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중산층은 빈곤의 존재 앞에서 ‘죄책감’을 넘어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대다수 중산층이 누리는 안락한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