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젊은이 참정권 유도 가치 있는 작품 나누기”

트위터로 20대 투표 독려 이벤트 임옥상 화백

머리는 부스스했고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임옥상 화백은 간밤에 한숨도 못 자고 점심까지 거른 상태로 방송사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었다. 6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보현봉 아래에 있는 임옥상미술연구소 작업실의 모습이었다.

50여 시간 동안 임 화백을 흥분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은 작업실 중앙의 탁자 위에 놓인 작은 노트북에서 시작됐다. 6월 1일 오후 그는 자신의 트위터(@oksanglim)에 글을 올렸다. “저는 젊은 친구들의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뜻에서 제 사인이 들어간 판화를 일정량 내놓겠습니다. 저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 책도 좋고, 영화표도 좋고, 돈도 좋고 무엇이나 가능한 것 내놓읍시다. 시간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한번 해 봅시다!”

정확히 1시간 20분 뒤 화가 양은주씨(@yangeunjoo)가 리트위트했다. 임 화백의 뜻을 받들어 6·2 지방선거에서 투표하는 20대 가운데 100명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이 10명에게 무료로 종합검진을 해 주겠다고 했고, 배우 안석환씨가 <웃음의 대학> 연극표 100장을 내놓았다.

반신반의하면서 시도한 그의 ‘20대 투표 독려 이벤트’는 폭발적인 호응을 불렀다. 유명인에서 일반인까지 100명 가까운 인사가 3000점이 넘는 선물을 기부했다. 화가는 그림, 문인은 책, 가수는 음반, 배우는 티켓을 각각 내걸었다. 직접 만든 빵이나 쌀 조청, 봉하 쌀 100%로 만든 누룽지, 전원주택 일가족 숙박권, 잡지 구독권, 무료 스케일링권, 명함 무료 디자인권 등 별의별 기증품이 쏟아졌다.

흥분은 투표일까지 이어졌다. 수 천 명의 젊은이가 그의 트위터에 접속해 투표를 했음을 증명하는 이른바 ‘인증샷’을 올렸다.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흥분은 충격으로 바뀌었다. 투표율이 15년만에 최고치(54.5%)를 기록했고, 선거 결과도 여론조사와 일반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의 표현처럼 ‘트위터 혁명’의 중심에 있던 임 화백은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와 마주앉은 뒤에도 그 충격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듯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기자가 많이 찾아오는군요. 정신이 없겠습니다.
“트위터에 글을 올리자마자 폭발적으로 일이 벌어져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를 정도예요. 트위터의 위력이라는 게….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젊은층의 투표율을 올려 보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해서 하게 됐습니까.
“정치라는 것이 정파가 있고, 그 정파는 정권을 잡기 위해 파워게임을 할 게 아니겠어요? 그런 정도까지는 우리도 이해를 해요. 그런데 그게 공동체 전체를 절망감으로 몰아넣을 지경이면 얘기가 다르죠. 다른 정파를 완전히 깔아뭉개고 그 위에 자기를 세우겠다는 식이잖아요. 어떻게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말이 일 개인도 아닌 위정자의 입에서 나옵니까. 세상을 평화롭고 화목하게 하려는 게 예술가의 본능인데 견딜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최소한의 문화적 방법으로 젊은층을 견인해 낼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겁니다.”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트위터를 택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사실 요즘 전시 작품을 한다고 다른 활동을 접고 있었어요. 6월민주포럼에도 미안하다고 하고 안 나갔죠. 거기 나갔으면 이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오히려 작업만 하고 있으니까 더 위기의식을 느꼈나 봐요. 선거 하루 전인 6월 1일 점심을 먹으면서 우연히 얘기가 시작됐어요. 이창현 국민대 교수한테 자문했더니 트위터가 최고라는 거예요.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트위터에서 힘을 받아 많이 팔렸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고요.”

트위터는 언제부터 하게 됐습니까.
“몇 달 전에 그냥 열어만 놓고 개점휴업 상태였죠. 제가 스마트폰이 없는 데다 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컴퓨터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트위터를 해 보니 어땠습니까.
“조금 해 보니까 재미는 나더라고요. 아, 여기 붙어 있으면 그림 그릴 시간이 많이 침해를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잖아요. 글 쓰는 사람은 글, 시각 예술가는 시각적인 것을 통해 각각 소통하자는 것이죠. 그 질적인 성격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폭발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게 저한테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이번 트위터 이벤트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매우 어려운 질문인데요.그래도 조금은, 한두 명이라도 투표장에 가게 하면 그게 성공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소박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상당히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같은 게 생겼어요. 제가 모임에 가서 박수를 많이 받아요. 이번에 엄청난 일을 했다며….”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20대 투표 참여자에게 줄 선물로 판화 1000점을 내놨습니다. 전업 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제가 (작품이 들어간) 연하장을 해마다 보내는 것 아시죠. 10여 년 동안 한 해 평균 150장에서 200장 정도 보내거든요. 작품은 기본적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고파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 낸 작품의 존재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에요. 교회 같은 데 그려 놓고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이지 ‘돈 없어? 넌 아니야!’, 이런 게 아니거든요.”

이 말을 듣고 보니 ‘상품으로서의 그림’을 거부하는 임 화백의 예술관이 이번 트위터 이벤트에도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작품을 사고파는 것이 나눔의 방식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상품으로서의 작품은 많은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임 화백은 설명을 이어갔다.
“이데올로기가 빠져야 한다든가 특정한 돈 있는 사람에게 맞춰야 된다든가 이런 제약이 있잖아요. 이 시대에 살면서 작가로서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거예요. 그렇게 하려면 안 팔리는 걸 감수하든가 사회적 억압이나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등 말할 수 없는 난관을 겪어야 해요. 그게 싫어서 제가 민중미술을 한 거죠.”

임 화백은 이번 트위터 이벤트를 하면서 덤으로 발견한 게 작품을 나눌 수 있는 일종의 ‘비빌 언덕’이었다.

“우리나라가 이상한 사회여서 그렇지 서구 사회에서 무정파 예술가는 없어요. 그게 말이 돼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는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들한테 그냥 작품을 줄 수 없잖아요. 그러면 작품이 아주 천하게 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짜는 가치로 인정되지 않거든요. 이번 이벤트는 그런 돈의 가치가 아니라 정신적 가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로 치환될 수 있는 작품 나누기라고 할 수 있어요. 젊은이의 참정권 유도라든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지키기 등의 가치가 담보된 결과물로서의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는 거죠.”

어떤 판화 작품을 내놓을 겁니까.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까.
“아니에요. 이제 만들어야죠.”

임 화백께서는 예술가로서 4대강 사업 반대 등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입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와 유시민 경기지사 후보를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했는데….
“우리나라가 이상한 사회여서 그렇지 서구 사회에서 무정파 예술가는 없어요. 그게 말이 돼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는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그런 것에 대해 이상한 눈을 뜨고 보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고, 이는 옳지 않다고 봐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으면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고 정리되면 정리된 대로 말하는 거죠. 그걸 가지고 누구는 정치적이야,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저는 우습게 봅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제스처는 오히려 침묵이에요. 공산주의한테도 안 당하고 극우파한테도 안 당하고… 보신주의죠.”
임 화백은 1980년대 등장한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으로서 한국 민중미술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0년대에는 민족미술협의회 대표를 맡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22명의 예술가, 시대와 소통하다>(전영백 엮음, 궁리)에 따르면 ‘변화하는 시대를 직시하면서 함께 행보한 그의 작품은 사회·정치·문화적 매개체로서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올해가 ‘현실과 발언’ 창립 30주년인데 어떤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가나아트센터 전관을 무료로 내줘서 7월 말에 조촐한 기념식도 하고 30년 전 전시를 재현도 하려고 해요.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행보를 해 왔는가 보여 주는 전시를 할 겁니다.”
민중미술이 우리 사회와 문화·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한 개인의 자각의 과정이었는데 이것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사회적·역사적 그것(자각)이 시간상으로 좀 늦어졌잖아요. 우리들의 자각이 사회를 깨우게 하는 데 조금이지만 기여를 한 것 같아요. 문학이 가장 먼저 했는데 우리가 또 가담함으로써 그것이 입체적으로 될 수 있는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민중미술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습니까.
“대학원 졸업 때까지 연극반이나 하고 술이나 열심히 퍼마시는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서울대 법대가 앞에 있잖아요. 거기서 데모하는데,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가위 눌렸어요. 내 젊음이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한가, 예술이라는 미명을 쓰고 이렇게 비겁하게 살아야 되나 하는 가위눌림이었죠. 예술이라는 게 초사회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듯한 것인가. 논문 다 쓰면서 답을 냈어요.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내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 못 그려도 좋다, 10년 내가 노력하면 분명히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5년 정도도 안 돼서 자신을 갖기 시작한 거죠.”

예술가도 먹고살아야 하고 요즘 예술에서도 공공 부문의 몫이 크지 않습니까.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데 대한 불이익은 없습니까.
“이익이 절대 없죠.”

어떻게 활동을 유지해 나갑니까.
“모르겠어요, 어떻게 사는지…. 노무현 정권 때도 ‘권력 노무현’은 너무너무 싫어했죠. 김대중 정권 때도 마찬가지고요. 체질적으로 권력을 싫어 하나 봐요. 권력의 메커니즘이라는 건 너무나 비예술적이잖아요. 공학적이고 폭력적이고 말이죠.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그랬는데 지금 이명박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해서 잃을 게 뭐가 있나요. 그러니까 큰 프로젝트 같은 데는 불려가지 못하는 거지… 뻔하지 뭐.(웃음)”

그런데도 임 화백의 작품은 ‘자본주의적 가치’로 봐도 고가잖아요.
“제가 민중미술 10여 년 하니까 호암갤러리, 지금은 리움미술관이죠, 거기서 큰 전시회를 열어 줬어요. 그때 사회에 지울 수 없는 확실한 마크를 해 놓은 모양이에요. 그때가 서슬 퍼런 노태우 정권 시절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제 운이 좋은 거라고 볼 수 있겠죠.”
임 화백은 삶과 작품 모두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전주대 교수직을 던지고 가나화랑 전속작가로, 또 거기서 벗어나 전업작가로 나섰다. 서양화가, 설치미술가, 공공미술가, 환경미술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도 회화에서 조각·건축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대학교수나 전속작가의 직위를 스스로 버린 까닭이 궁금합니다.
“교수직은 제가 교수협의회장을 맡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에요. 전속작가는 외환 위기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끝났고요. 사실 전속작가가 되는 순간 저는 돌이킬 수 없는 폐쇄회로로 들어간 것이죠. 화랑에서 저한테 일정한 지원을 하니까 그림이 팔려야 되잖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돈 가진 자가 원하는 그림은 정해져 있거든요. 그런 사람 비위 맞추는 그림 그리기가 싫었던 거죠.”
자유는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전속작가를 그만두면서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 됐지만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인사동에서 ‘당신도 예술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중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어요. 미술이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려면 벽으로 막힌 미술관에서 나와야 한다고 해서 ‘벽 없는 미술관’ 운동도 벌였죠. 그게 봤더니 공공미술이더라고요. 전시장이나 사적 공간이 아니라 대중의 생활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 그런 걸 하다 보니까 건축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설치예술도 하게 되고,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런 식으로 자꾸 넓어진 거죠.”

신동호가 만난 사람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임옥상 미술’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미술이라는 게 특별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정말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고도로 정화되고 본질적이고 범접할 수 없는 최고 가치처럼 얘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죠. 예술이라는 것은 너와 나 사이에 놓여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해요. 즉 너와 내가 그냥 만나서 별로 할 얘기가 없다면 그걸 놓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면 훨씬 더 부드럽게 얘기가 되잖아요. 그런 정도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작업을 제가 할 수 있다면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딴 데를 보고 반목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있어서 너와 내가 눈길을 나누고 서로 얘기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또 그런 게 사회에 많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관계를 맺어 주는 끈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죠.”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